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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 자료

나주 복암리고분군

by T의Tistory 2022. 9. 16.

나주 복암리고분군은 1996년을 전후하여 기초조사 및 발굴조사 등이 이루어졌고, 발굴조사 후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고분군 중에서 3호분으로 불리는 고분이 발굴조사 되면서  영산강유역 고대사를 밝힐 수 있는 자료들이 축적되었다.

 

고분이 축조된 곳은 영산강 본류 북쪽의 들판이다.  고분군이 축조될 당시의 지형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나마 가장 잘 보여주는(또는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근대지형도이다.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근대지형도(1:50000 / 국토지리정보원 제공)

근대의 영산강은 지금과 같지 않다. 영산강하구둑(1981년 완공)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나주 동강면 아래까지 "남해만"이라고 불리는 바다였으며, 영산강도 밀물과 썰물에 맞춰 바닷물이 드나들었던 감조하천이었다.

 

고분 이야기를 하는데, 영산강을 언급하는 것은 고분에 묻힌 사람들과 그들을 묻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처럼 지금의 고분군 모습을 보면, 넓은 들판 속에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 것만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현재 사람들은 어쩌면 이 지역 고대인들이 넓은 들판에서 농사만 짓고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농경문화만으로 영산강유역 고대사를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주 복암리고분군의 모습

아래 사진은 나주 동강면에 소재하는 "월양리 구양유적"의 집자리에서 출토된 현무암이다. 

나주 월양리 구양유적(2지역) 33호주거지 출토 현무암(호남문화재연구원, 2018, 나주 월양리 구양유적(2지역) 발굴조사 보고서)

구양유적 뿐만 아니라, 복암리고분군 인근에서 발굴조사된 "복암리유적"에서도 현무암이라든지, 제주도식 토기 등이 출토된 예가 있다. 또한 나주를 비롯한 영산강유역 일대의 고대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백제, 가야, 왜, 중국 등 주변 여러나라들과 교류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영산강유역 사람들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되 영산강을 통해 바다로 나아가고, 제주(탐라)를 비롯하여 백제, 가야, 일본(왜), 중국 등과도 교류하였다. 또한 반대로 주변 여러 지역에서 바닷길과 영산강을 통해 이 지역으로 들어오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해상세력으로서의 면모는 영산강유역 고대사를 이해하는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바탕 속에서 바라보았을 때 아직까지 안개가 자욱한 이 지역 고대사가 하나 둘 풀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