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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리뷰

삼국지와 후한서 한전의 '진왕' 이해 -윤용구- 논문 리뷰

by archaeologist 2021. 12. 3.

삼국지와 후한서 한전의 '진왕' 이해- 出土文獻傳存文獻字句변화를 중심으로-    (저자 : 윤용구)

 

1. 머리말

연구사 검토 : '진왕'에 대한 논란의 배경

- 삼국지에는 마한과 진한에 각기 진왕이 병존하는 모습으로 기록 -> 내용 모호
- 후한서는 마한에만 진왕이 존재하며, 삼한 전체의 왕으로 표현 -> 사회 발전 단계상 납득 불가

문제제기 : 사료비판의 필요성 제기

- 두 사서 모두 사본으로 전해져 옴 -> 자구의 탈락과 異同이 심함
- 사서의 재편성, 삭제(删削), 수정(文)이 많음
- 사서 편찬자의 현재적 관점이 투영된 측면이 있음

접근방법  : 진왕 기사의 유형화 및 시대적 추이 검토 / 사서 간의 비교를 통한 '진왕' 기사의 원모습과 자구변화의 이해 기준 제시 

연구목적 : 삼국지 변진한전의 진왕은 진수(陳壽) 저술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변형된 결과이고, 후한서의 진왕에 대한 인식은 저자 범엽의 삼한과 백제에 대한 인식이 투영된 결과임을 증명하고자 함.

2. '진왕' 기사의 유형과 추이

* 위략 : 265년 무렵 저술 / 삼국지 : 280년 무렵 저술 / 후한서 : 5세기 전반 무렵 저술

진왕 기사의 유형을 '삼국지'형과 '후한서'형, '한원'형, '위략'형 4개로 구분함.

유형 분석 결과

- 진왕은 마한의 목지국에만 있다는 후한서의 이해를 따르지만 '진한의 진왕'은 부정됨. -> 삼국지의 기록은 배제되고 있음을 의미
- 삼국지를 기반으로 작성된 후한서에서 '삼한 전체를 다스리는 진왕'의 존재를 도출하게 된 것에 대한 의문 제기

유형 분석 결과에 대한 저자의 견해

   * 삼국지 진왕 기사는 전존 되면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후한서 한전에 대한 불신론은 벗어나야 한다.   

3. '삼국지'의 전존과 '진왕'

1) 위략과 삼국지의 차이

- 삼국지는 위략의 기사를 상당분량 축소하였을 것으로 추정.

- 진수는 '위략'의 기록, 특히 후한말 이전의 기록과 민족지적 서술을 중심으로 삭제·변개함

- 진수의 삭제, 생략방식의 예 :  그 말은 마한과 같지 않으며, / 병장기는 마한과 같다. /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동일하며 / 등등

- 삼국지 동이전은 원 자료라 할 수 있는 '위략'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삭제, 변개한 결과이며, 한전의 진변한전 역시 삭제가 심한 것이므로 '진왕'관련 기사를 이해하는데도 이점을 유의해야 함을 강조함.

2) '삼국지' 한전의 '진왕 기사

-"辰王支國. 臣智或加優呼臣雲遣支報安邪踧支濆臣離兒不例拘邪秦支廉之號. 其官有魏率善·邑君·歸義侯·中郞將·都尉·伯長." (삼국지 한전)

   -> 이 기사를 하나의 문장(사실)로 볼 수 없다고 전제한 뒤 마한의 진왕 기록은 '辰王支國'만 사실로 한정함.

-"其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 魏略曰: 明其爲流移之人, 故爲馬韓所制." (삼국지 한전)

-"魏略曰, 辰韓人常馬韓作主, 世相承" (翰苑 번이부, 삼한전 所引 '위략')

    ->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에서 '辰王'은 '辰韓'의 오기임을 주장함.

** 저자는 진한의 진왕 기록은 필사본으로 전존되던 삼국지가 남송을 전후한 시기에 변형된 것이라 추정함.

4. 후한서의 진왕관과 백제

1) 범엽의 세계관과 '동이전' 서술

- 후한서의 한조에 대한 사방 경계와 소국의 수에 대한 명료한 표현은 '삼국지'나 '위략'에 없는 것이다.

- 후한서는 범엽이 '삼국지' 한전의 기사를 분석하고 나름 고증한 결과로 봐야 한다.

- 후한서 동이전은 삼국지 동이전에 대한 범엽의 연구보고서이다. 

2) 범엽의 진한인식

- 범엽은 삼한 관련 정보를 전적으로 백제를 통한 전문과 지식에 의존하였을 것이라 가정함

- 백제에 의한 정보 전달로 인해 백제가 삼한의 대표격으로 부각된 것이고, 남조는 백제를 삼한의 맹주격으로 이해함.

- 이러한 배경으로 7세기 전반까지 신라와 가야, 제주지역까지 백제의 부용국이었다는 인식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파악함.

- 그 대표적인 기사 중 하나가 '수서'의 '신라왕이 본래 백제인이었다'는 기록을 언급함.

- 이 기사는 진한왕이 마한인이다라는 3세기대 인식의 재현이라 주장함. 

** 마한이 삼한의 중심이자 목지국 진왕이 삼한의 땅을 다스렸다는 후한서 한전의 진왕관은 범엽이 새로운 자료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당시 중국과의 교섭을 독점하던 백제가 자신을 삼한의 대표로 자처하며 제공한 정보에 따랐던 것이라 주장함.

5. 맺음말

- 삼국지 진한의 진왕은 진수 저술 당시에는 없었고, 필사 등으로 전해져 내려오다 변형된 것이다.

- 후한서의 진왕 기사는 5세기 전반을 살았던 범엽의 백제관이 투영된 것일 뿐 마한의 진왕이 삼한을 총괄했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

 

논문에 대한 의문점

1. "辰王支國. 臣智或加優呼臣雲遣支報安邪踧支濆臣離兒不例拘邪秦支廉之號. 其官有魏率善·邑君·歸義侯·中郞將·都尉·伯長."를 하나의 사실로 볼 수 없다고 한 점. 

   * 하나의 사실로 볼 수 없는 근거를 "내용적으로 연결된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의문점 

   - 그런데 이 기사와 관련하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각주에 따르면 "秦支廉:분명히는 알 수 없으나 臣雲(新國)의 遣支報, 弁辰安邪(國)의 踧支, 濆臣離兒(臣濆活國)의 不例, [弁辰]拘邪[國]의 秦支廉으로 해독하는 견해가 있다." 라고 되어 있다. 

   - 위의 기사는 다음의 기사 이후에 온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馬韓在西. 其民土著, 種植, 知蠶桑, 作綿布. 各有長帥, 大者自名爲臣智, 其次爲邑借, 散在山海間, 無城郭.

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涿國·臣濆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釁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冉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辟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莫盧國·占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濆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 凡五十餘國.

   - 즉 전체 기사를 보면, 마한의 위치와 민속지를 논한 후 각 국의 지도자에 대한 언급이 있다.

   - 이 부분을 감안하여 전체 문맥에서 "辰王支國.... "기사를 이해해보면,

    '진왕은 월지국을 다스린다.  신지는 간혹은 우대하여 부르기도 하는데, 신운국(臣雲)은 遣支報, 안야국(安邪)은 踧支, 분신리아(濆臣離兒 ; 신분활국-臣濆沽國-)는 不例, 구야국(拘邪)은 秦支廉라고 부른다. 그 관직에는 魏率善·邑君·歸義侯·中郞將·都尉·伯長이 있다.' 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여기서 안야국과 구야국의 신지에 대한 명칭이 붙은 이유는 진왕이 삼한 전체를 다스린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이해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2. ① 「(弁辰韓) 其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 魏略曰: 明其爲流移之人, 故爲馬韓所制  (삼국지 한전)

    ② 「魏略曰, 辰王治目支國(目)支國置官亦多 曰臣智」 (翰苑 번이부, 삼한전 所引 魏略)

    ③ 「魏略曰,  辰韓人常用馬韓人作主, 世世相承.」 (翰苑 번이부, 삼한전 所引 魏略) 

   저자는 ①의 기사에 대해 '목지국에 도읍을 둔 마한의 진왕과의 구별이 어렵고, 그에 속한 12국이 진한인지 변진인지 논란이 있다고 전제한 뒤, ③의 기사를 진수가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진한인~작주' 부분을 '진한인지왕' 곧 '진한왕'이라 하지 않고, '진왕'으로 잘못표기했다는 박대제(박대제 2006, '진한의 '진왕'문제', "고대한국 초기국가의 왕과 전쟁", 경인문화사)의 견해에 주목함.

* 저자 역시 삼국지 저술 당시 진수가 처음에 진한이라 썼는데, 후대에 변형되어 진왕이 되었다고 피력함.

  -> 즉  "其十二國屬辰韓. 辰韓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韓不得自立爲王. 魏略曰: 明其爲流移之人, 故爲馬韓所制" 으로 보아야 한다고 함. 

의문점 

진왕을 진한으로 바꿔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그 12國은 辰韓에게 臣屬되어 있다. 辰韓은 항상 馬韓사람으로 만들어 대대로 世襲하였으며, 辰韓은 자립하여 王이 되지는 못하였다. 위략에 이르기를 그들은 [外地에서]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馬韓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먼저 "그 12국은 진한에게 신속되어 있다"는 해석에는 무리가 없다. 이 기사의 앞 내용을 보면, 진한에 대한 설명 후, 변진(변한)에 대해 서술하고, 진한과 변한에 총 24개국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그중 12국이 진한에 속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이 기사에서는 주어를 진한으로 바꿔도 무난하다. (물론 원래 기사처럼 '진왕'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변진한 24개국 중 12개국이 진왕에 속한 것으로  해석하면, 마한의 영향하에 놓인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기사 말미에 붙는 위략 내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 된다)

○ 하지만 그 다음 문장은 해석에 다소 의문이 남는다.  "진한은 항상 마한사람으로 만든다" 는 해석은 다소 어색하다. 물론 의역을 한다면, 진한은 항상 마한사람으로 왕을 삼는다"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 경우 의미상으로 "진한"으로 사용하나 "진왕"으로 하나 동일하다. 하지만 해석만을 놓고 고려한다면  "진왕은 항상 마한사람으로 만든다"라는 해석이 더 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 

○  '진한은 자립하여 왕이 되지 못한다'는 기사는 의미상 뒤에 붙는 위략의 기사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는데, 이를 고려하면, 진한은 마한의 제재를 받기 때문에 스스로 왕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 된다. 문맥상 크게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진왕은 자립하여 왕이 되지 못한다'라고 해석하는 것 역시 어색하지는 않다. 삼국지 편찬 이후에 작성되기는 하였지만, 후한서 한조를 보면 다음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目支國, 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즉 마한은 함께 왕을 세운다는 기록이다. 이러한 후한서의 기록에 대해 논문의 저자는 범엽이 삼국지 한전의 기사를 분석하고 고증한 결과일 뿐 '실증'된 기록은 없다고 판단하였지만, "共立"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면, "不得自立爲王"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리뷰

- 역사에 있어서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일까?  자연스럽다. 자연스럽지 않다 라는 것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까?

-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 자연스러움을 판단하는 것은 연구자의 몫이라는데 동의한다. 

- 하지만 만약 자신이 정해놓은 틀 속에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논리(?)로 '자연스러움'을 논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 이 논문을 읽고 후한서 한조의 기사에 납득하기 어려울만큼 오류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사료 비판, 역사학적 접근법을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 삼국지와 후한서 한조의 진왕에 대한 다양한 논문이 있으므로, 차후 다른 논문도 검토해 보고, 비교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