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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 자료

가마의 입지

by T의Tistory 2023. 8. 24.

고고학 유적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 연구자들은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입지"일 것이다.

 

입지(立地)의 사전적의미는 "인간이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하여 선택되는 장소"(네이버 한자사전)이다.

고고학에서는 대체로 유적의 자연·인문 지리적 환경을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지의 속성은 해발고도(혹은 표고), 방향, 하천과의 거리 등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데, 이 글은 방향에 대한 것 이다.

 

과학기술,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건축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집의 방향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스세권, 슬세권, 역세권이 중요한 요즘이지만, 살아보면 "남향", "북향"이 얼마나 주거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지 체감할 수 있다. 집을 보러 다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 소개 문구에서 보았거나, 따져 본 단어 중 하나가 "남향" 아니던가?

 

남향의 입지 조건은 과거에도 마찬가지라서, 많은 주거 유적들이 남향에 입지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생산유적인 토기가마, 기와가마, 자기가마 등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모든 유적이 100% 남향은 아니다. 대체로 남향의 경향성이 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연구자들은 가마의 방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 다른 방향에 비해 바람이 잘 통하고 습기가 적어 열효율을 높이기 적절한 위치가 남향이다.
- 가마 중 동쪽, 서쪽, 북쪽에 위치하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의 방향에 맞춘 것이다.
- 우리나라의 풍향은 주로 남동·남서풍이며, 겨울에는 북서풍이 부는데, 이는 가마의 방향에 따라 조업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 대부분의 가마가 남쪽에 위치하는 것은 조업시기가 봄~가을에 활발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지에서 간과되고 있는 점이 있다.

 

바로 일교차에 의한 바람 방향의 변화이다. 위의 견해들은 계절에 따라 바람 방향이 일정하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가마에 불이 들어가면 몇 일 밤낮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즉 바람 방향이 밤낮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바람방향과 열효율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두번째로 가마의 구조를 통해서도 위의 견해가 적절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나 토기가마나 고려시대 기와가마 등을 보면, 불을 지피는 공간인 요전부가 지하식인 경우가 매우 많다.

현장 조사를 하다보면, 지하식인 요전부에 들어가면 바람 영향이 매우 적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끝으로 이에 대해 실제 전통가마를 운영하는 분께 문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가마에서 불은 제어의 대상이다. 불의 온도, 세기, 시간 등에 따라 기물에 영향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형태, 색상 등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오롯이 불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바람 등 외부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